본 교회가 창립되기까지는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는 일본이 한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체결한 을사조약이 이루어진 해이다.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강대국들은 이 조약을 승인하였고 일본은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기 위해 이또오를 파견, 이들 일행은 일병을 거느리고 궁궐에 들어가 황제와 대신을 위협하고 보호조약안에 승인할 것을 강요하였다. 이에 이완용을 위시한 5명의 대신이 조약체결에 찬성하고 한규설만이 완강히 거부하였으나 조약은 체결되어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은 물론 내정까지 관장하게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교회는 항일운동의 근거가 되어 안으로는 2천만 겨레의 저항정신을 일깨우면서 밖으로는 국제 열강에 호소하는 등 국권상실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였다. 때를 같이 하여 중마루(현 영등포 교회 및 시장 일대)에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이 교회가 바로 영등포 교회이다. 중마루 교회가 설립되자 복음의 소식이 이곳 양평동에까지 전파되어 언더우드 선교사 전도에 감동된 김준기, 조씨(김준기의 외조모) 등이 영등포 교회에 참석 믿기로 작정하고 이 두 분의 전도로 이덕윤, 이풍순, 최명도, 송유현, 전순애 등이 영등포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본 교회 설립의 원동력이 되었다.